
지난 주말, 얼떨결에 대구 중구 쪽에서 열린 결혼 박람회에 다녀왔다. 사실 결혼 준비라는 게 막연하게 생각할 땐 그냥 다들 하는 거니까 싶었는데, 막상 상담 테이블에 앉아서 구체적인 숫자를 듣기 시작하니 기분이 묘했다. 입구에서부터 사람이 꽤 많아서 놀랐는데, 다들 이렇게 진지하게 미리 준비를 하나 싶어 괜히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상담지 한 장에 담긴 현실적인 예산
상담해주시는 분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솔직히 내가 생각한 예산이랑 현실적인 웨딩홀 대관료는 차이가 꽤 컸다. 대구 지역 유명한 예식장 몇 곳을 견적 뽑아보니 대관료만 해도 최소 몇백만 원은 가볍게 넘어가고, 여기에 식대까지 더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워졌다. 단순히 장소만 빌리는 게 아니라 스드메며 뭐며 다 묶어서 진행해야 할인 폭이 크다는데, 패키지로 묶어버리면 나중에 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바꾸기 어려울 것 같아서 쉽게 도장을 찍질 못하겠더라. 괜히 상담지 뒷면에 끄적거린 예산안만 계속 지우개로 지웠다 다시 썼다 반복했다.
서울 예식장과 비교하며 느낀 허탈함
지인이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들었다는 비용을 떠올려봤다. 서울은 식대만 해도 인당 8만 원에서 10만 원은 기본으로 잡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대구는 그나마 조금 낫다고 하지만 주차 문제나 홀 분위기를 따지다 보면 결국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된다. 박람회장에서 본 웨딩홀 영상들은 다들 하나같이 화려하고 예쁜데, 정작 내 현실적인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그 화려함이 오히려 거리감 있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30대 소개팅이나 결정사 등급 따지는 게 결혼 준비의 시작이라지만, 막상 이렇게 홀 하나 고르는 것부터 턱 막히니 그 과정들이 다 얼마나 복잡할지 짐작조차 안 간다.
스드메 패키지는 정말 필요한가
박람회장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게 다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을 한 번에 계약하면 몇십만 원은 할인해 준다는데, 그 할인이 과연 정말 이득인 건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그냥 깔끔하게 하고 싶은데, 샘플 앨범을 보여주며 이 정도는 해야 나중에 후회 안 한다는 말을 들으니 귀가 팔랑거리는 걸 겨우 참았다. 내가 직접 발품 팔아 알아본 업체들은 이 가격보다 저렴하게도 가능한데, 박람회라는 공간이 주는 묘한 압박감 때문인지 여기서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결국 상담만 받고 팜플렛만 잔뜩 챙겨 나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짐만 되는 것 같아 좀 허탈했다.
사주를 봐야 하나 고민했던 순간
상담 중에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이 궁합이랑 결혼 사주 이야기를 심각하게 나누는 걸 들었다. 결혼을 앞두고 사주를 보는 게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는데, 나도 은근히 그런 걸 신경 써야 하나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사실 결혼이란 게 사람이 하는 일인데 사주가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도, 막상 이런 자리에 오면 그런 미신적인 부분에도 마음이 기우는 게 사람 마음인가 보다.
앞으로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들
결국 박람회장에서는 아무것도 계약하지 않고 나왔다. 괜히 섣불리 결정했다가 나중에 마음 바뀌어서 위약금 물어내는 상황이 생길까 봐 무서웠던 것 같다. 친구들은 다들 그냥 대충 업체 정해서 빨리 끝내는 게 속 편하다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걸리는지 모르겠다. 다음 달쯤에 다른 곳에서 또 비슷한 행사가 있다는데, 그때는 조금 더 공부를 해서 가야 할지 아니면 그냥 플래너를 끼고 진행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지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는다. 예산 문제부터 식장 위치, 심지어는 사소한 장식 하나까지 선택의 연속이라니, 결혼 준비가 이 정도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지 처음 알았다. 오늘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몸만 피곤하고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