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까지 가서 상담받고 그냥 돌아온 날

강남까지 가서 상담받고 그냥 돌아온 날

강남역 한복판에 있던 그 사무실 분위기

지나가다가 광고를 하도 많이 보기도 했고, 주변에서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본다는 그런 곳 있잖나. 친구 하나가 요즘 노블레스니 뭐니 하는 곳들이 체계가 잘 잡혀있다길래, 홧김에 예약을 잡았다. 사실 내가 그런 시스템에 딱 맞을까 싶은 의구심이 들긴 했는데, 막상 강남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생각보다 더 딱딱해서 조금 당황했다. 상담실이 꽤 많았는데 문을 닫고 들어가니 왠지 면접 보러 온 기분이 들더라. 상담해주시는 분이 앉자마자 차트부터 꺼내시는데, 내가 무슨 상품 진열대에 올라간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다.

등급표라는 게 정말 있긴 하더라

말로는 조건보다는 성향이 중요하다고 하시는데, 상담지 작성을 하고 나니 슬쩍 보여주시는 ‘참고용’ 자료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말로만 듣던 결정사 등급표 같은 거였나 보다. 직업이랑 학벌, 심지어 부모님 직업까지 촘촘하게 칸이 나눠져 있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인데, 여기 적힌 기준으로 보면 내 점수는 어느 정도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사실 굳이 이렇게까지 따져가면서 사람을 만나야 하나 싶어서 괜히 왔나 싶기도 했다. 상담해주시는 분은 웃으면서 ‘이건 어디까지나 참고일 뿐’이라고 하셨지만, 그 눈빛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가입비 이야기를 듣고 나니 식은땀이

가장 중요한 가입비 이야기를 듣는데, 처음에는 대략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정도를 생각했거든. 그런데 횟수랑 등급에 따라서 부르는 게 값이더라. 프리미엄이니 뭐니 하면서 1,000만 원 단위가 훌쩍 넘어가는 상품을 설명해주시는데, 내가 지금 결혼하려고 이 돈을 쓰면서까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물론 대전결혼정보회사 쪽도 알아본 적 있었지만, 서울 강남은 역시 물가 자체가 다른 건지. 아니면 내가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다. 200만 원 후반대부터 시작하는 기본 상품도 있다고 하셨는데, 설명을 듣다 보니 왠지 그걸로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 것 같은 분위기를 계속 조성하셔서 더 찝찝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상담만 한 시간 넘게 했는데,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너무 기계적인 느낌이 강하게 남았다. 물론 내가 원하는 조건을 미리 말해주면 매칭해주니 효율적이긴 하겠지.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만남은 적어도 이런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소개팅 앱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건 맞는 사람끼리 서류 검토하고 시간 맞춰 만나는 게 마치 비즈니스 미팅 같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상담실 문을 열고 나오니 강남역 퇴근길 인파가 쏟아져 나오는데, 저 많은 사람 중에 나랑 맞는 사람 하나 없을까 싶더라.

그냥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든 생각

결국 아무것도 계약하지 않고 나왔다. 상담해주시는 분은 ‘나중에라도 마음 바뀌면 연락 달라’고 명함을 건네주셨는데, 그 명함을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는 지하철을 탔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으로 대충 검색해보니, 다들 후기가 극과 극이더라. 잘 만나서 결혼했다는 사람도 있고, 돈만 날리고 횟수 소진했다는 사람도 있고.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나중에 정말 급해지면 다시 여기를 찾게 될까? 아니면 그냥 지금처럼 혼자 지내다가 우연히 누구를 마주치게 될까. 모르겠다. 오늘 상담받느라 쓴 2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댓글 1
  • 상담 내용 들으면서 왠지 제가 원하는 만남의 가치관이랑 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런 느낌이 계속 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