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한복판에서 결정사 상담받고 온 날

강남역 한복판에서 결정사 상담받고 온 날

서류 더미를 들고 서성거리던 오후

주말에 뜬금없이 강남역 근처에 있는 결혼정보회사를 다녀왔다. 사실 처음부터 여기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아니다. 친구들이 하나둘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단톡방에 올라오는 결혼식 사진들이 이제는 좀 무덤덤해질 때쯤, 부모님 성화가 극에 달했다. ‘결정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게 내 인생에 올 줄은 몰랐는데, 막상 상담 예약 버튼을 누르고 나니 마음이 묘하더라. 30대 중반쯤 되면 다들 한 번씩은 해본다는 그 ‘상담’이 도대체 뭐가 그리 대단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약속 장소인 논현동의 한 빌딩 로비에 들어서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다들 비슷해 보였다. 너무 과하게 꾸미지도, 그렇다고 너무 대충 입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딘가의 옷차림들. 나도 비슷하게 입고 갔지만 괜히 남의 옷차림만 훑게 되는 게 참 우스웠다. 상담비는 따로 안 든다고 했지만, 왠지 모르게 내 정보가 팔리는 건 아닐까 하는 찜찜함이 가시질 않았다.

쏟아지는 개인정보와 등급에 대한 생각

상담실에 앉으니 카운셀러분이 대뜸 태블릿부터 들이민다. 내가 어떤 학벌을 가졌고, 연봉은 얼마인지, 부모님 재산은 어느 정도인지 묻는 질문지였다. 이게 소개팅인지 대출 상담인지 잠시 헷갈렸다. 200만 원에서 많게는 500만 원이 훌쩍 넘는 가입비 이야기를 들으니 현실감이 확 떨어졌다. 요즘 물가도 미친 듯이 오르는데, 평균 결혼 비용이 얼마라는 둥 통계 자료를 보여주면서 마치 지금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하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성혼 중심 매칭’이라는 문구였다. 결혼정보회사 노블리 같은 곳들이 강조하는 그 시스템이 정말 사람을 잇는 건지, 아니면 조건표에 맞는 부품을 끼워 맞추는 건지 잘 모르겠다. 상담하는 내내 내 가치관이나 성격 같은 건 뒷전이고, 오로지 숫자로 증명되는 것들만 체크리스트에 담기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세이클럽 시절이 그리운 이유

어릴 적에 하던 세이클럽 타키 같은 커뮤니티에서는 그냥 대화가 통하면 친구가 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되어 찾아간 만남의 장은 너무 계산적이다. 결정사 후기들을 찾아보면 다들 ‘조건은 만족하는데 대화가 안 통했다’거나 ‘상대방의 생활 패턴이 너무 안 맞았다’는 말이 많다. 르매리 같은 재혼 결정사 상담 통계에서도 결국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본다고 하던데, 사실 그건 첫 만남에서 1시간 동안 파악하기엔 너무 어려운 문제 아닌가.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길거리에 커플들이 참 많이 보였다. 저 사람들은 결정사 비용을 내고 만난 걸까, 아니면 그냥 운 좋게 길에서 만난 걸까.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내가 너무 실속만 따지는 세대가 된 건 아닌지 싶어 씁쓸했다.

섣불리 도장을 찍지 못한 채로

결국 그날은 가입하지 않고 나왔다. 매니저님이 문밖까지 나와서 ‘생각해보시고 연락 주세요’라며 명함을 건네는데, 그 눈빛이 마치 ‘너 아니어도 회원 많아’라고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수백만 원을 쓰면 진짜 내 인생의 짝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내 조건만 다시 한번 확인받고, 더 높은 비용의 멤버십을 권유받는 반복 속에 갇히게 될까.

지금도 가끔 결제 문자가 날아오면 그냥 지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혼인 건수가 줄어든다느니,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느니 하는 뉴스들도 사실 결정사 앞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소리 같다. 그냥 오늘 하루가 피곤하다. 다음 주에 또 다른 곳 한 군데 정도 더 가볼까 싶기도 한데, 막상 가려니 귀찮고 그냥 이대로 둬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마음이 계속 왔다 갔다 한다.

댓글 2
  • 결정사 비용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지네요.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할 때, 소개팅 앱을 몇 번 해봤는데,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요.

  • 정말 공감했어요. 첫 만남에서 정보 수집에 집중하는 모습이 소개팅이나 상담처럼 느껴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