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카페에서 서류를 건네받던 날의 어색함

강남역 카페에서 서류를 건네받던 날의 어색함

서류 봉투를 건네받던 날의 온도

지난달쯤이었나, 평소라면 절대 갈 일 없었을 강남역 근처의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결혼정보회사에서 나왔다는 상담사가 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영 어색했다. 사실 뭐 대단한 결심을 하고 간 건 아니었다. 주말마다 혼자 카페에서 유튜브나 보고, 넷플릭스 영화나 돌려보는 게 일상이 된 지 꽤 됐고,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 소식을 알리니 괜히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 탓이 컸다. 상담사가 내민 서류 봉투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빳빳한 종이에 인쇄된 정보들은 내 연봉과 학력, 그리고 부모님 직업까지 아주 건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게 상품처럼 취급되는 기분이라 처음엔 좀 불쾌했는데, 막상 보고 있으니 내가 시장에서 어떤 가치로 평가받을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7,500원이었나, 아무튼 꽤 비쌌던 기억이 난다.

가입비에 대한 솔직한 체감

상담사가 부르는 가입비는 들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기본 가입비가 300만 원에서 많게는 500만 원까지 올라갔는데, 여기에 성혼 사례비를 별도로 떼어준다는 말을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 300만 원이면 해외여행을 세 번은 다녀오거나, 평소 갖고 싶던 가전제품을 몇 개는 사고도 남을 돈인데, 이걸 불확실한 만남을 위해 써야 하나 싶었다. ‘조건이 좋으면 더 좋은 분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 묘하게 압박으로 다가왔다. 지금 내 연봉이 얼마고, 어떤 직장을 다니는지가 사람의 매력을 다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그곳에서는 그게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결국 당일 결제는 안 하고 명함만 받아왔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 속 내 통장 잔고를 보니 한숨이 푹 나왔다.

프로필 사진을 고르는 기묘함

집에 와서 프로필에 올릴 사진을 고르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더라. 평소 셀카를 잘 안 찍어서 친구들이랑 놀러 가서 찍힌 사진들뿐이었는데, 하나같이 ‘너무 꾸민 티’가 나거나 ‘너무 일상적’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적당히 깔끔하면서도 너무 의욕 없어 보이지 않는, 그런 애매한 사진을 찾는 데만 세 시간은 걸린 것 같다. 결국 미용실 가서 컷트라도 좀 하고 새로 찍을까 싶어 검색도 해봤는데, 비용이 15만 원 정도 하더라. 이 과정 자체가 내 외로움을 돈으로 환산하는 작업 같아서 마음이 조금 묘했다. 이게 진짜 사랑을 찾는 길인지, 아니면 나라는 상품을 잘 포장해서 경매장에 내놓는 과정인지 구분이 잘 안 갔다.

연애와 맞선의 온도 차이

가끔 친구들이 주선해주는 소개팅은 그래도 ‘어떤 사람일까’ 하는 설렘이 있는데, 이건 뭐랄까. 그냥 조건이 맞는 사람끼리 점검하러 나가는 기분이랄까. 최근에 나간 일반 소개팅은 커피값 2만 원 정도로 끝났지만, 여기서 말하는 만남은 커피값이 아니라 ‘만남 횟수’를 차감하는 방식이었다. 1년 동안 5회 만남에 얼마, 이런 식인데 만약 그 5번의 만남이 다 별로라면? 생각만 해도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인지 다들 왜 그렇게 깐깐하게 조건을 따지는 건지 이해는 가면서도 씁쓸했다. 나조차도 ‘적당히 대화가 통하고, 경제적인 수준이 비슷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결국 나도 그들 중 하나인 셈이다.

남겨진 생각들

결국 아직 가입은 안 했다. 주변에서는 다들 한번 해보는 것도 경험이라고 하는데, 선뜻 내 돈을 내고 내 가치를 평가받으러 가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퇴근길에 혼자 고기를 구워 먹으러 갔는데, 옆 테이블 커플이 투닥거리는 걸 보면서 ‘저런 갈등조차 부러운 건가’ 싶었다. 아니면 그냥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져서, 누군가를 맞추는 과정이 두려운 걸지도 모르겠다. 매칭 업체 상담실의 그 차가운 에어컨 바람과 서류 봉투의 질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돈을 내면 정말 이상형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외로움을 돈으로 잠시 유예하는 것뿐일까. 지금은 그냥 퇴근하고 좋아하는 예능이나 하나 더 보는 게 마음 편하다.

댓글 3
  • 사진 고르다가 시간 엄청 뺏어버리네요! 저도 셀카 잘 안 찍어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 서류 봉투에 개인 정보가 이렇게 상세하게 적혀 있는 건 처음 느껴보는 거였어요. 마치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는 느낌이랄까?

  • 카페 분위기가 정말 어색했어요. 넷플릭스 보면서 혼자 카페 가는 게 익숙한데, 갑자기 정보가 쏟아지는 서류 봉투를 받는 게 좀 당황스러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