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서를 받아보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청구서를 받아보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견적서 한 장에 무너지는 평정심

결혼 준비라는 게 처음에는 그저 우리 둘이 좋아서 하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웨딩홀 투어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 되어버렸다. 상담 실장님이 건네는 견적서를 볼 때마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서울 시내 괜찮은 곳은 식대만 해도 1인당 8만 원을 우습게 넘기고, 거기에 필수 옵션이라는 이름으로 붙는 꽃 장식 비용이나 대관료를 더하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누군가는 3,000만 원 정도면 적당하다고 말하는데, 막상 눈앞에 닥친 현실은 그 숫자가 너무나 작게 느껴진다. 강남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 외곽으로 빠져도 결국은 비슷비슷한 금액대에서 수렴하게 되더라.

성수기와 비수기의 미묘한 200만 원

다들 봄이나 가을에 결혼하고 싶어 해서 예약 전쟁이 치열하다. 3월에서 6월, 9월에서 12월 사이가 이른바 성수기라는데, 이때는 돈을 더 줘도 자리가 없어서 난리다. 차라리 장마철이나 한겨울인 비수기를 노리면 200만 원 정도는 아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계산해보니 1,900만 원대와 2,100만 원대 사이의 차이가 발생하긴 하더라. 하지만 200만 원을 아끼겠다고 한여름 폭염 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식장을 예약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아니면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쾌적한 환경에서 하는 게 나은 건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어차피 평생 한 번뿐이라는 생각에 결국은 성수기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나를 보며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어플과 소개팅은 그저 시작일 뿐

결혼 준비를 하다 보니 주변에서 소개팅 어플이나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다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막상 결혼 얘기가 나오면 그때부터는 정말 ‘비즈니스’다. 재산 상태를 공개하고, 부모님 지원 규모를 파악하고, 혼인 기간 중 발생할 경제적 문제까지 고려하는 과정을 보면 낭만은 온데간데없다. 누군가는 ‘취집’이나 ‘조건’을 논하지만, 사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게 다 현실적인 생존 전략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도 이상형 테스트 같은 것에 시간을 낭비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끝나지 않는 비용과의 싸움

공공예식장을 찾아보기도 했다. 일반 식장보다 절반 정도 저렴하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예약 경쟁률이 거의 콘서트 티켓팅 수준이다. 밤새워 대기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이런저런 비교를 하다 보면 사실 무엇이 정답인지 점점 흐릿해진다. 식대 8만 원에 보증 인원 300명을 채워야 한다는 조건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지금 누굴 위한 잔치를 하는 건가’ 싶어 한숨이 나온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금을 입금하고 돌아오는 길은 마냥 개운하지만은 않다.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불안함

결혼 준비가 끝나면 이 불확실한 감정들도 사라질까. 주변에서는 다들 그렇게 한다고 위로하지만, 나는 여전히 돈 계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누군가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칭찬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지나친 낭비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그들의 관점일 뿐이다. 정작 내가 매달 지출해야 할 예산표와 카드 명세서를 보고 있으면, 내가 꿈꾸던 결혼식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잔금 결제일’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비슷한 고민으로 잠 못 들고 있겠지.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건지 여전히 확실한 답은 찾지 못했다.

댓글 1
  • 저는 소개팅 앱 시작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는데, 점점 진지해질수록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깨달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