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적 배경이 인연의 전부일까
주변을 보면 교회 다니는 친구들은 참 신기하게 인연을 찾는다. ‘교회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만남이 가지는 그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낯설기도 하다. 런닝맨 같은 예능에서 유명 안무가와 지예은의 관계가 썸인지 아닌지 말이 많을 때도,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처럼 이런저런 소개팅 앱을 전전하거나 친목 모임을 억지로 찾아다니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달까. 그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고, 예배 후에 밥을 먹고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을 하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 그런 루틴 속에서 연애가 싹트는 건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데이팅 앱과 첫 만남의 피로감
반대로 나는 최근에 괜찮다는 소개팅 앱을 깔았다가 일주일도 안 되어 삭제했다. 기독교 전용 앱이라는 것도 깔아봤는데, 프로필에 적힌 신앙관이나 출석 교단 같은 것들이 오히려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3만 원 정도 결제해서 프로필을 상단에 올렸을 때는 무슨 홍보 대행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나가서, 어색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진다. 전주동물원 같은 곳에서 데이트하며 여유를 즐기는 연인들을 보면 평화로워 보이는데, 나는 그 평화를 얻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지침과 관계의 무게
최근에는 연인에게 지쳤다는 친구의 하소연을 한참 들어주었다. 사랑한다는 건 서로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과정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를 맞추기 위해 내 일상을 깎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연애가 짐이 되는 순간이 오면, 과연 결혼이라는 시스템이 나에게 구원일지, 아니면 또 다른 책임의 시작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요즘은 결혼 지원금이나 이런저런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금전적인 혜택보다는 그냥 내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는 게 더 힘들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억지로 만들어진 인연에 대한 회의
가끔은 내가 너무 조건만 따지는 게 아닐까 싶다가도, 반대로 너무 감정에만 충실하다가 큰코다친 경험이 있어서 선뜻 누군가에게 다가가기가 조심스럽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친목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도 생각해보면 결국은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라, 그 안에서 순수한 관계를 기대하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차라리 혼자 동네 산책을 하거나 밀린 영화를 보는 게 마음 편할 때가 많다. 관계라는 게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체감하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물음표
그래서 다들 어떻게 결혼까지 가는 걸까. 누군가는 소개팅으로 만나 3개월 만에 결혼 날짜를 잡고, 누군가는 10년 연애 끝에 헤어진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건 알지만,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감정의 비용은 누가 보상해주는 걸까.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를 처음 만났던 20대 초반의 내가 그립다. 그때는 지금처럼 이것저것 따지거나 ‘이 사람이 나랑 맞나’를 분석하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첫 만남의 그 짧은 시간 동안 상대방의 말투, 가치관, 심지어는 나중에 겪을 갈등까지 예견하려 애쓴다. 이게 과연 성숙해진 건지, 아니면 단순히 겁쟁이가 된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